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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차이콥스키의 아내 정보 줄거리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감독 음악천재 차이콥스키

by funfun 한 마미 2024. 5.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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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콥스키의 아내 영화 포스터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감독이 각본, 연출한 영화로 오딘 런드 바이런 주연의 전기 로맨스 영화입니다. 음악천재 차이콥스키와 그의 아내였던 안토니나와의 불행했던 결혼 생활을 아내 안토니나 입장에서 그려낸 작품으로 제75회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을 받았습니다. 영화 <차이콥스키의 아내 >의 정보와 줄거리, 그리고 감독에 대해 알아보고 차이콥스키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차이콥스키의 아내 기본정보

개봉 : 2024.05.01

장르 : 멜로, 로맨스, 드라마, 전기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국가 : 러시아 연방, 프랑스, 이탈리아.

러닝타임 : 143분

배급 : (주)엣나인필름

감독 :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출연 : 일리오나 미하일로바, 오딘 런드 바이런 외

소개 : '신이 주신 영원한 남편이에요 차이콥스키의 아내, 그게 내 운명이에요' 19세기 러시아 모스크바 귀족 가문 출신의 안토니나. 러시아 최고의 작곡가 차이콥스키, 그를 처음 봤던 날부터 원하는 건 단 하나. 그의 명성도 소문 따위도 중요치 않았습니다. 오직 차이콥스키의 아내, 그의 곁에서 끝까지 이 사랑을 지키겠습니다. 

차이콥스키의 아내 줄거리 요약

음악을 사랑하는 안토니나는 우연한 기회에 차이콥스키를 만나게 됩니다. 안토니나는  첫눈에 반해 차이콥스키를 사랑하게 되고, 안토니나는 음악원 제자가 되기로 결심하며 차이콥스키에게 적극적으로 구애합니다. 하지만, 그는 그녀를 거절합니다. 그 이유는 지금까지 여자를 사랑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안토니나는 포기하지 않고 차이콥스키에게 연애편지를 끊임없이 보내고 가문의 1만 루블이라는 거액을 지참금으로 내세우며 구애를 합니다. 결국 그녀의 끈질긴 구애에 차이콥스키는 안토니나에게 사랑 없는 형제애와 같은 결혼 생활도 괜찮다면 결혼을 하겠다고 승낙하고 안토니나 또한 조건을 받아들이며 결혼을 하게 됩니다. 결혼식이 끝나고 차이콥스키는 안토니나가 아닌 친구들이 탄 마차를 타고 친구들과 피로연을 해 만취가 되어 돌아옵니다. 동성애자였던 차이콥스키는 욕망이 가득한 안토니나가 밤마다 다가올 때면 공포에 질려 밀어냅니다. 결혼과 동시에 차이콥스키의 정신은 안토니나로 인해 영혼이 옭아매여 있는 것 같아 작곡도 제대로 되지 않습니다. 안토니나는 차이콥스키의 남색의 성향을 알게 되고, 결혼 생활은 2개월도 지나지 않고 파경을 맞이하게 됩니다. 차이콥스키는 더 이상 아내와 살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안토니나의 사랑은 점점 광기에 가까워져 가고 평생을 최고인 작곡가 차이콥스키의 아내로 남겠다며 이혼을 하지 않고 끝까지 차이콥스키를 괴롭힙니다. 차이콥스키는 자살시도를 할 정도로 극심한 신경쇠약에 시달리기까지 합니다. 끝까지 이혼을 해주지 않으면서 다른 남자와 자식을 낳아 이름을 차이콥스키로 짓는 안토니나.. 사랑이 아닌 집착에 가까운 <차이콥스키의 아내>의 결말을 영화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감독

러시아의 무대 연출가 및 영화감독으로 무대 연출가론 모스크바에 있는 극단 고골 예술 센터의 감독을 역임할 정도로 인정받았으며, 영화감독으로는 유수의 국제 영화제에서 초청 및 수상을 하며 알드레이 즈비아긴체프 , 알렉세이 게르만 주니어, 일리야 흐르자노프스키 와 함께 러시아 영화계를 대표하는 인물 중 한 명입니다. 그는 1969년생으로 물리학 전공을 했지만 별다른 교육 없이 무대 연출가로 시작해 드라마를 주로 연출하다 2004년 장편 <라긴>으로 영화감독을 데뷔하였습니다. 2012년 <비트 레이얼> 영화로  제69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받아 국제 영화제  무대에서 이름을 알리기도 하였습니다. 2008년 <유리의 날> 영화로 로카르노 영화제에서 2개 부문상을 수상하였고 바르샤바 국제 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조금씩 명성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2018년 <레토> 영화로 유명해졌습니다. <레토>는 1980년대 러시아 언더그라운드 펑크 락 신을 다룬 영화로, 영화를 촬영하던 중 반정부 발언을 일삼는 그를 석연치 않게 보고 있던 정부가 극단이 정부 지원금 1만 달러를 횡령했다는 혐의를 뒤집어 씌워 자택 연금형을 받았었습니다. 하지만 화상통화로 지시를 내리고 변호사를 통해  집에서 리허설 푸티지 비디오를 찍은 USB를 반출하여 제작진과 배우가 겨우 완성시켰습니다. 그리하여 제71회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받았으며 칸 레드카펫에 참석한 제작진들이 키릴 세레브렌니코프를 연호하며 석방하라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습니다. 2021년엔 알렉세이 사르니코프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페트로프의 감기>를 제작해 제74회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받았습니다. 

표트르 차이콥스키 

러시아의 위대한 작곡가이자 러시아 클래식 음악의 거장으로 인정받은 작곡가입니다. 우랄 지방 봇킨스크에서 태어났으며, 1850년에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법률 학교에 입학하여 가족과 떨어져 살았습니다. 학교 내 합창단에 들어가 음악을 공부하기 시작하였으며, 음악에 열정이 넘치던 차이콥스키는 1860년에 루빈시테인과 니콜라이 루빈시테인 형제가 주재한 음악교실에 입학하여 1862년에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으로 승격되어 1기 학생이 되었습니다. 안톤 루빈시테인과의 불화로 동생인 니콜라이 루빈시테인이 설립한 모스크바 음악원의 교수가 되어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떠났으며, 1874년에 대표적인 작품으로 꼽히는 피아노 협주곡 제1번 을 작곡했습니다. 벤자민 존슨 랭의 지휘로 한스 폰 뷜로가 보스턴에서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을 초연하였습니다. 이후 모스크바 음악원의 교수로서 1878년까지 근무하며 작곡활동을 병행하다가 러시아 철도왕의 미망인 나데즈다 폰 메크 부인의 후원을 받게  되면서  교수직을 사임하고 작곡에만 전념하게 됩니다. 부인은 15년 동안 후원해 주었고, 1878년 바이올린 협주곡을 작곡했고 1888년 발레음악 잠자는 숲 속의 미녀를 완성했습니다. 이후 차이콥스키는 세계적인 음악가의 명성을 얻게 됩니다. 1890년부터 폰 메크 부인의 후원이 끊어지며 경제적인 것보단 부인과의 교류가 끊어진 데에 큰 절망감에 빠집니다. 그 후 오페라 '욜란타'와 발레음악 ' 호두까기 인형'을 작곡하였습니다. 1893년에 그의 작품 중 최후의 걸작이 된 교향곡 제6번 비창 을 작곡하였습니다. 그해 11월, 6번 교향곡 초연을 지휘하고 9일 후 의문의 죽음으로 53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